전주 한옥마을에 비가 내리던 날
처마 밑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보낸 오후. 비가 만들어낸 또 다른 풍경.
전주행 KTX를 탈 때만 해도 날씨는 맑았다. 하지만 전주역에 도착하자마자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. 일정이 틀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시 망설였지만, 비가 내리는 한옥마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.
한옥마을에 들어서자 비는 점점 거세졌다. 관광객들은 우산 아래로 숨거나 카페로 들어갔다. 나는 한옥 처마 밑에 서서 빗줄기를 바라보았다. 기와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돌바닥을 두드렸다.
비가 내리면 모든 것이 느려진다. 그 느림 속에서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.
처마 밑에 서 있던 한 시간 동안, 나는 많은 것을 보았다. 빗방울에 반짝이는 청사초롱,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, 빗길을 뛰어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. 프랑스의 비는 차갑고 무겁지만, 한국의 가을비는 어딘가 부드럽고 서정적이었다.
비 오는 날의 비빔밥
점심시간이 되어 근처 비빔밥 전문점을 찾았다. 전주 비빔밥은 서울에서 먹는 것과 달랐다.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밥 위로 갖가지 나물과 육회가 올려져 있었다.
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비며, 창밖으로 여전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. 비빔밥의 따뜻함과 바깥의 차가운 비. 그 대조가 묘한 위안이 되었다.
오후가 되자 비가 그쳤다. 씻긴 듯 맑아진 하늘 아래, 한옥마을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. 물기를 머금은 나무들, 반짝이는 돌길, 비 갠 뒤의 청명한 공기.
비 때문에 예정했던 곳들을 다 돌아보지는 못했다.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.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, 비가 만들어내는 풍경의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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댓글 (2)
전주 비빔밥 드셨군요! 놋그릇 비빔밥이 진짜 전주 비빔밥이에요. 다음에 오시면 콩나물국밥도 꼭 드셔보세요~
비 오는 한옥마을의 운치를 이렇게 잘 표현하시다니! 처마 밑에서 빗소리 듣는 그 느낌, 저도 경험해봤는데 정말 좋았어요.